대구 곳곳에 서린 두사충의 애국심
대구 곳곳에 서린 두사충의 애국심
  • 백송이 기자
  • 승인 2020.11.25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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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서 소개한 두사충과 함께 이야기가 함께하는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담긴 대명동

계산동, 경삼감영공원, 대명동, 모명재, 형제봉, 담티고개대구에 위치한 이 지명들은 모두 역사 속 한 인물 두사충과 연결이 된다. 지난 호에 이어 그와 연관된 장소를 소개한다. 두사충이 대구에 자리를 잡은 지도 어느덧 수십 년이 흘렀다. 청나라의 신하로 살기를 거부하여 조선에 남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늘 가득했다. 그 때마다 대덕산에 올라 고향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추스렸고, 그리움이 한없이 메아리치자 아예 대덕산 밑으로 집을 옮겨왔다. 그는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大明)이라 붙이고, 제단을 쌓아 매달 초하루 관복을 입고 명나라 황제가 살던 북쪽을 향하여 배례를 올렸다. 또한 호를 명을 그리워한다라는 뜻에서 모명(慕明’)으로 바꾸었다. 두사충이 배례를 올렸던 대덕산 일대는 현재까지 대명동이라 불리며, 대명동은 11동까지 있는 대구에서 면적이 가장 큰 동이 되었다. 평생 풍수를 연구한 두사충의 안목을 느낄 수 있다.

이순신과 두사충의 깊은 우애가 깃든 모명재

어느덧 죽음을 예감한 두사충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묘터를 스스로 점지해두었다. 아들에게 묘자리를 알려주려 고개에 이르렀지만 기침가래로 고개를 넘지 못했고, 이 곳이 현재의 담티고개. 두사충이 본래 묻히고자 했던 자리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그의 묘는 모명재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인 두릉 두씨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모명재 전경
모명재 전경

모명재(수성구 만촌동 716)는 두사충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912년에 세운 재실이다. 재실 이름은 그의 호를 따서 모명재라고 지었다. 생전 이순신 장군과 두사충 장수는 깊은 친분이 있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이순신과 두사충의 우정을 표현하는 동상이 모명재 앞마당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순신과 두사충 동상
이순신과 두사충 동상

이순신은 두사충이 수만리 길을 달려와 전쟁에서 두 번씩이나 도와준 사실에 감격하여 봉정두복야라는 한시를 지어 고마움을 표현했으며 그의 시는 모명재 대청 기둥 주련에도 걸려 있다. 산새가 아름다운 이 곳에서 역사 속 두사충과 조우하며 천천히 걸어보면 어떨까?

 

백송이 기자 gnkd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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