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읍지(邑誌)는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일대에 조문국(삼한 시대 초기 국가)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벌휴이사금이 조문국을 징벌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서 조문국은 삼한시대 의성 지역에 번성했던 국가였고, 벌휴이사금 때인 185년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된 ‘의성 금성산 고분군’ 370여 기가 있는데, 그 중 조문국 경덕왕릉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한 농부가 오이밭을 갈다가 커다란 구멍을 발견해 들어가 보니 금칠을 한 석실 한가운데에서 금관을 쓴 금소상(金塑像)이 나타났다. 욕심이 난 농부가 금관을 벗기려 하자 손이 금관에 붙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의성 군수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나는 신라시대 조문국의 경덕왕이다. 이 무덤을 개수 봉안토록 하여라”고 말했고 이후 봉분을 쌓고 관리했다고 전해진다.
경덕왕릉 앞에는 봉분 모양의 ‘고분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2009년 발굴한 대리리 2호분의 내부 모습이 재현돼 있고, 유구와 출토 유물, 순장문화를 통해 당시의 매장풍습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초전리에는 ‘의성조문국박물관’이 있는데, 전국의 조문국 관련 유물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어 특히 어린이가 있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문익점이 택한 땅, 의성
삼우당(三憂堂)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붓대에 목화씨를 숨겨 들여온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
목면화기(木棉花記)’에 따르면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이 관찰사로 지방을 순시하게 되었는데, 그 때 의성군의 지세가 목면종자를 얻었던 원나라 금주성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현재의 의성군 금성면 제오동이다.
금성면 제오리 공룡 발자국 옆에 서 있는 ‘문익점목면유전비’는 바로 그 유전(遺田)에 문익점의 후손들이 세운 비로 조선 순종 3년인 1909년 건립되었다.
이후 문익점의 장손 문승로는 의성을 목화대량산지로 만들어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원나라 승려 홍원의 도움으로 목화씨를 가려내는 일과 솜을 타는 일 등을 배우게 되었다. 손자 문래는 솜으로 실을 만드는 물레를 만들었는데, ‘물레’라는 말이 바로 ‘문래’에서 유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손자 문영은 베를 짜는 직조 방법을 연구했는데, ‘무명’ 또한 그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헐벗은 백성을 따뜻하게 해준 면 생산은 의성을 기점으로 한 문익점 일가의 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윤희 기자 gnkdg@naver.com